방랑자가 보는 여행자는 남들이 원하는 걸 들어주고 일을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제 오빠를 찾는 여정에 그가 어쩌다보니 합류했지만 그렇게 도와주는 꼴이 우스웠다. 신에 닿았던 자신을 쓰러뜨린 소녀는 하찮고 시답잖은 일을 하는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왜?" "너 멍청이야? 남이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게?" "그치만, 내 도움이 아니면 안된다 하니까." "하아... 잘 들어, 그렇게 멍청하게 다 도와주면 네 몸이 남아나지 않아, 착해 빠진거야?" 그 말에 루미네는 눈을 굴리다가 그를 쳐다보았다. "넌 말야, 착해 빠졌다고." "어? 응..." 손이 많이 가기는. 그가 루미네와 한번 연결 되었을 때, 그리고 손을 잡았을 때. 그가 보았던 그녀의 마음 속. 그래서 더욱 방랑자는 루미네가 애틋했다. "그러다..." "왜?" "너 마저 잃으면 난..." "무슨 소리 하는거야, 나는 강하니까 괜찮아." 말은 그렇게 하는데 불안했다. "그러고보니, 방랑자." "왜?" "너는 과거를 정말 원하는대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할거야?" 그렇게 묻는 루미네의 표정은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루미네가 말했던 쌍둥이 오빠를 생각한 걸까. 그 모습을 보며 방랑자는 자신의 과거를 전부 생각했다. 그 과거를 잊고 싶어서 그는 세계수를 이용해 과거를 바꾸기로 했지만 벌어진 일은 되돌아가지 않았다. 과거에 등 돌려 도망쳤던 자신. "과거... 과거, 그게 나에게 있어 죄업이지만, 그게 있기에 지금이 있으니까." "응?" "미련이 오히려 사라졌어. 오히려 난 상쾌해졌거든. 만약 네가 날 발견하지 않았다면 계속 의뭉스럽게 살았겠지. 안개 낀 것마냥. 내 죄업은 다 잊고. 하지만 네가 날 발견해주었기에." 이어지는 말 대신 남녀가 가까이 된다. 잠시 얼굴을 가까이하다가 입술을 포개었다 떼어내곤 그는 밉살스럽게 웃고 있었다. "내가 있는거야." 루미네의 얼굴이 확 붉어지고, 바람이 분다. 귀까지 붉어진게 좋아서 방랑자는 루미네의 뺨에 손을 대어 어루만져보자 따뜻하다 생각했다. 자신과 다르게 심장이 있는 이방인. "그러니까. 루미네." "응?" "네 마지막도, 내 마지막도 함께였음 좋겠어. 죄악을 저지른 인형이 죄를 안고 살아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사람은 필요 하잖아?" 그리고 우물거리더니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너를 좋아한다고."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계속 네가 생각나. 내가 심장이 있다면 지금 미친 듯이 뛰고 있었을 것 같아." 그 말에 루미네는 쑥쓰러워 시선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