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을 졸업하게 된 아이는 삼촌이 보고 싶다고 칭얼였다. 특히나 아네모의 삼촌이 좋은 아이는 유독 그러했고 결국 아네모 전원을 부를 수 밖에 없었기에 유치원은 혼란으로 술렁인다. "삼촌!" 아이가 벤티를 보자마자 꼭 껴안는다. "에헤~" 그렇게 둘이 말하자 스카라무슈는 썩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아이가 좋다하니 그렇게 두기로 했다. 두 사람의 아이. 전체적으로 그를 닮았고 깊은 호박과 같은 눈은 제 엄마를 똑 닮았다. 먼저 와선 아이랑 놀아주는 다른 멤버를 보며 그만둔다는 말에 리더인 벤티가 그렇게 하라 한 것도, 소속사 사장인 나히다도 그러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어차피 너는 그럴거였잖아?" 그렇게 말했던 벤티. "하아... 하아... 안, 늦었어?" 자전거를 뒤늦게 타고 온 루미네는 숨에 차 있었다. 오늘 연습이라고 늦어선 옷의 단추도 하나씩 밀려 올라간 걸 보니 허둥지둥 온 게 분명하니까 스카라무슈는 피식 웃음이 세어나왔다. "안 늦었어." 그리곤 흘깃 보자 어지간히도 급했는지 안에 대학 경영 수영복을 입은 걸 보곤 학창시절에 생각나 흥미로웠다. 학부모들이 웅성인다. 세상에 아네모 아냐? 거기에 탈퇴한 지 꽤 된 멤버가 애딸린 유부남이 되었다는 것도 놀랄 노릇이었다. "벤티 삼촌, 어제 말야~" "응, 으음... 그렇군, 그래서?" 아이가 벤티의 귓가에 속삭인다. 분명 어제 본 아동 프로그램의 얘기겠거니 싶어 스카라무슈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차피 상관 없었다. 무대에 쏠리는 이목을 늘 견뎠으니까. "읏차, 오랜만이야. 스카라무슈. 그만 둔 뒤로 처음이네." "부에르?" "그래서 솔로라도 활동할 생각은 없어?" "퍽이나 있겠어?" 돈이 모자를 이유도 없고 궁하지도 않다. 아이 둘 정도 키울 돈은 충분했기에 스카라무슈는 짜증에 한숨을 쉬었다. 애초에 다시 하겠냐고. "아빠! 아빠아빠! 벤티 삼촌이 XX 만나게 해준대!" "XX?" 아, 최근 보는 아동용 애니메이션 말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머리를 쓰다듬자 화장실에서 옷을 제대로 단추를 채워 온 루미네가 왔다. "세월 빠르다." "그러게." "애 막 태어났을 때 무슈가 그렇게 울고 있던게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되었네." "뭐? 언제까지 넌 그런 얘기를 하는거야?" 울었던 것은 맞다. 루미네가 혼절하면서까지 낳은 아이. 첫 아이가 첫 울음을 터뜨린 날엔 그토록 감동해서 울고 있었으니까. 둘째가 뒤늦게 와선 졸업식 자리에 앉는다. 학부모 자리에 앉은거 보면서 루미네 또한 몇번 브라운관에 나왔던 사람이라 술렁인다. 기사에 난 적 있다. 유명 아이돌 스카라무슈의 아내가 국가대표 수영선수라는 말 말이다. "벌써 저 아이가 초등학교 간다는게 난 믿기지 않아." 루미네가 졸업식 대표로 또박또박 말하는 첫째를 보며 말한다. 옛날처럼 루미네는 목에 늘 방수 패치를 하고 있었다. "너랑 결혼한 지 그럼 칠년이나 된건가?" "아마도?" 스카라무슈는 루미네의 손을 보자가 맞잡았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평가, 그런건 전부 상관 없다.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행복하기만 했다. 아이돌 생활로 채워지지 않는 누군가가 주는 사랑, 지금 루미네와 나누는 사랑. 루미네와 나누는게 더 좋았으니까. 루미네가 스카라무슈의 어깨에 기댄다. 예전에는 그가 아이돌인 거때매 멀찍이 하려 했는데 이제는 딱히 그런 것 없이 루미네가 이렇게 먼저 기대어 오곤 했다. "나랑 결혼하길 잘했다 생각해?" 스카라무슈는 그 말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내가 후회할 거라 생각해?" 졸업장을 받은 아이, 첫째가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스럽게 부모인 둘에게 졸업장을 내민다. 오빠가 멋지다고 박수치는 둘째, 그런 지금이 좋은 스카라무슈는 루미네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안에 그렇게 입은건 또 하고 싶어?" "뭘?" "알잖아?" 그 말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첫째가 초등학교로 올라가니 조금 시간이 비기 시작한 루미네는 마침 휴강일 때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벌써 졸업한 아이도 있었고 루미네는 임신 기간이랑 육아 때매 휴학을 했다보니 아직 재학 중이었다. 이제 4학년이니 곧 졸업을 준비했고 졸업하면 적당히 실업팀에 들어가지 않을까. 아직 결혼하지 않고 연애한 친구들은 루미네를 보고 바로 말을 한다. "일찍 결혼했는데 어때?" "어? 응... 뭐 난 나쁘지 않아." "졸업하자마자 임신했다고 해서 놀랐잖아, 거기에 졸업식 끝나고 얼마 안가서 루미네 네가 좋아하던 아이돌 멤버가 은퇴까지하고, 충격이었겠어." "어... 그게..." 그 사람이 남편이라고 말할 수 없는 루미네는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쩌지, 이걸 말해야하나. 뉴스 기사로는 그냥 국가대표 수영선수라곤 했으니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는걸까? 아니면 알면서 이러나. "아예 은퇴 해버려서 상심이 컸겠다, 루미네." "맞아, 갑자기 은퇴였지? 뉴스 기사도 엄청 나왔잖아! 계약은 문제 없다고 했지만 실려가는 학생도 겁나 많았고." "그게, 얘들아... 그니까..." "응?" 루미네는 식은 땀을 흘리다가 겨우 웅얼이다 말했다. "그 사람이... 내 바깥사람... 이야..." "뭐??????"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얘, 만우절 지난지 한참이야~ 뭘 그런 말을 해~ 네가 스카라무슈의 광팬인건 알지만 그건 망상이잖아 망상." "진짠데..." 루미네는 휴대폰에서 결혼 사진을 보여주었다. 친구들이 본 신랑은 아무리봐도 결혼식에 축하한다고 축하 케이크를 신랑인 스카라무슈 얼굴에 엎어버린 리더인 벤티, 다른 멤버들이 신랑 측 사진에 찍혀있고 신랑은 스카라무슈. 그때 왜 결혼식때 청첩장을 안 보냈냐고 물었지만 이런 이유였나 싶었다. "아니, 그럼 유명 국가대표 선수라는게 너였어?" "응..." 루미네는 그렇게 대답하곤 머리를 긁으며 헤헤 웃었다. 지금 스카라무슈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둘째 보고 있으려나. "살다살다 내 친구가 아이돌이랑 결혼하는 것도 다 보네..." 그러다 친구가 한가지 물었다. "근데 스카라무슈는 알파 아니야? 넌 베타 아니었어?" 그 말에 루미네는 숨겨둔 걸 밝힌 김에 그 동안 밝힐 필요가 없던 것도 말했다. "그게... 오메가였어..." "어?" "무슈가, 그니까..." 말이 길어질 것 같았다.
"루미네?" 술에 취해 있는 루미네, 친구들이 불러서 왔지만 어지간히도 많이 마셨나보네 싶었다. 내일은 연습 쉬는 날이라 했으니 상관 없겠다만 조수석에 루미네를 앉히고 안전띠를 둘러준 뒤 운전석에 앉았다. "왜이리 많이 마셨어?" "무슈~ 나 무슈, 정~~~ 말 조아~" 술 냄새를 풍기며 얼굴을 루미네가 가까이 한다. "무슈도 나 조아?" "내가 언제 널 싫어했냐?" "응~ 루미네두~ 무슈 조아~" "하아... 그렇게 꽐라 될 때까지는 마시지 말라 했잖아." 술 냄새와 함께 풍기는 옅은 페로몬. "나 무슈랑~ 결혼해서 조아~ 응~ 헤헤..." 잠시 빨간 불이 되자 루미네가 말한다. "키스 해조~" "키스?" 빨간 불이니 그걸 보던 스카라무슈는 루미네에게 짧게 입술을 맞췄다. "무슈... 조아해..." 그리고 술에 취해서야 들을 수 있던 한마디. "초등학교 때 부터 쭉..." 그대로 곯아 떨어진 루미네, 그리고 그 말에 스카라무슈는 얼굴을 붉혔다. 바보 같다 생각하며, 자신은 어릴 때부터 루미네에게 품던 뿌리부터 썩어빠진 집착이었는데 루미네는 그를 오래전부터 쭉 좋아했다가 고백한 거였다. "너는... 진짜..." 내가 어떻게 널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 스카라무슈는 그렇게 말하곤 멈춰선 귀까지 얼굴이 붉어져 차에서 핸들에 머리를 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