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AU

『챔피언, 기사가 사실입니까?』 모니터에 보이는 건 챔피언에게 수많은 기자들이 마이크를 내밀고 있었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이건 며칠 전 뜬 기사인 악질적인 황색언론의 기사 때문일 것일거라고 그는 예측했으며 루미네는 아직 챔피언이 된 지도 얼마 안되었고 언론에 팔리는 것도 많으니 분명 여기에선 사실이 아니라고 대답할 거라 생각한 그는 따분한 일이라며 모니터를 끌려는 찰나에 그 답변이 들렸다. 『네. 사실입니다. 저는 그 사람과 진지하게 교제하고 있습니다.』 그 눈에는 흔들림 하나 없었고, 거짓 하나 없는 당당함이 있었다.

급하게 연락하니 챔피언은 받지 않았다. 애초에 바쁜 사람이니 당연하겠지만 스카라무슈는 초조했다.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멋대로 그렇게 답한거지, 애초에 서로 좋아하는 건 맞지만 루미네, 그것도 챔피언이 갑자기 황색 언론을 무대응하기보단 답변했기에 언제 연락이 오나 싶어서 계속 연락하기만 바빴다. 언제 받을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신경은 곤두서 있고 오후에 받을 일은 전부 미루고 계속해서 부재중 전화는 닿지 않고 있었고 문하생들은 쉿, 조용히. 이렇게 말하며 그의 신경을 자극하지 않고자 조심하고 있었다. 결국 3시간이나 전화를 계속 걸고, 부재중이라는 메시지가 자동 응답으로 오고, 기어코는 겨우 챔피언은 바쁘신 스케쥴이 끝났는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미안." "넌 진짜 전화를 왜이리 안받아?" "미... 미안......! 바쁘기도 했어." 그는 한숨을 푹 쉬곤 일단 받기라도 했으니 다행이라며 화내면서 일어섰던 걸 다시 앉았다. "바빠?" "아, 오늘 아침에 기자들도 난리고 오늘 대외 일도 많고 챔피언 일이 밀린게 너무 많은 것 같아. 점심 한시간 지나면 광고 촬영 해야하고." "하아... 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어?" "하고 싶은 말?" 루미네는 음, 이렇게 말하며 짧은 생각을 가졌고 스카라무슈는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인내심은 커녕 임계점은 이미 터진지 오래고 어처구니 없음이 앞섰으며 오히려 이렇게 고민하는 모습이 짜증났다. "넌 아침에 네가 뭔 소릴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나 보구나?" "아. 그거?" 루미네는 바로 다시 답했다. "맞는 말이라 그랬는데 왜? 더 두어봐야 언론이 쓸데 없이 가십거리로 더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하아......" 이마를 짚은 스카라무슈는 네 행동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거냐며 핀잔을 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됐어. 끊을게." "응, 이따 봐." 전화를 끊은 소리가 들린다. 스카라무슈는 전화를 껐고 의자에 기대었다. 한숨이 푹 나오며 다리를 꼰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점심시간인데 딱히 뭘 먹을 기분도 아니었고 배는 고프지도 않았기에 스카라무슈는 천장을 보던 몸을 앞으로 숙여 업무 책상에 턱을 괴었다. 정말 하루하루 정신 없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도대체 그 챔피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스카라무슈는 다시 한번 한숨을 푹 쉬었다.

체육관의 문을 닫으려고 나오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질색인 스카라무슈는 영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이런 황색 언론은 챔피언의 모든걸 기사화해서 입방아에 내려 왈가왈부 하고 싶은건가? "체육관 관장 스카라무슈씨. 한 말씀 해주시죠." 목구멍에서 나올 뻔한 욕을 삼키고 일이 있으니 노코멘트 하겠다며 빠져나온 스카라무슈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생각나는 그 한마디. 『네. 사실입니다. 저는 그 사람과 진지하게 교제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왜 멋대로 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챔피언을 생각했다. 언제나 올 곧고 자기가 바라는 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멋진 호박빛 눈. 담은 것은 미래였으니 어느새 이끌려있었다. 마치 그게 자연스러웠던 것처럼.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모자를 눌러 써 둔 루미네가 있었다. 당연한 거지만 새로운 챔피언에 관해서 언론과 여론이 떠들기 바쁘니 그런거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알아보는 사람만 더 많지 않나 싶던 스카라무슈는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고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가 오자 팔짱 낀 루미네는 기분 좋은지 얼굴을 붉히고 있었고 그게 썩 싫지 않은 스카라무슈는 팔짱 낀 팔을 잠시 풀더니 손을 깍지 꼈다. "저녁은?" "안 먹었어." "나도 안 먹었어, 뭐 먹을래?" "아무거나. 단 것만 아니면." 시답잖은 대화가 오가고 그는 겨우 삼킨 말을 꺼냈다. "넌 팬도 많잖아. 나랑 다르게." "그래서?" "멋대로 그래도 되는 거야?"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되는 거라면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 걸. 나도 스카라무슈를 좋아하고." "정말 넌 생각 없이 지르는 거야? 애초에 내가 무슨 취급인지는 알기나 해?" "응. 알고 있어. 그래서 그렇게 말했어." "뭐?" 루미네는 그를 보며 당당히 말하고 있었다. "넌 잠깐 나쁜 길에 들었던 거고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 스카라무슈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가 작게 "아니, 난 나쁜 놈이야." 그렇게 웅얼이고만 있었다. 애초에 영웅이 될 수 없을 뿐 더러 누군가를 구해줄 수 있는 선인도 아니고. "하지만 정말 나쁜 짓을 한건 그 박사인 걸." 아직도 안 잡혔대. 루미네는 그렇게 말하곤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차가운 그와 다르게 따뜻한 손은 놓아주지 않은 채. "애초에... 네가 먼저 그랬으면서." "뭐, 뭐뭐뭔 소리야?! 내가?" "응."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루미네는 음식점에 들어와서도 알아본 아이들이 "챔피언 누나, 사인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내미는 작은 용지에 사인을 해주며 손을 흔들고 웃어주고 있었고 아이의 엄마가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러 왔다. 그리고 알아본 사람은 스카라무슈를 보고 썩 좋게 볼 리가 없다. 애초에 그가 뭘 하려했는지 이미 황색 언론이 뒷조사 해서 뿌렸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루미네는 그를 보고 살포시 웃었다. "나만큼은 어떻게 되어도 네 편이니까."

여전히 황색 언론은 시끄럽기 그지 없었다. 『챔피언 열애 사실 인정, 하지만 상대는?』 보나마나 자신에 대한 험담이겠지. 애초에 언론에게 이렇게 재밌는 가십거리는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한 스카라무슈는 루미네를 생각했다. "너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는거야?" "아~ 괜찮아. 미리미리 일은 다 끝냈거든." 에브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루미네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너랑 나랑 처음 만났을 땐 둘다 이브이였는데, 어느새 진화했네." 처음엔 둘다 이브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루미네의 이브이는 에브이가, 스카라무슈는 블래키로 진화해 있었다. "아, 저 둘 서로 좋아하나 봐." 블래키는 에브이에게 얼굴을 부비며 기분 좋게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걸 보고 있는 루미네를 보며 스카라무슈는 은근히 손을 움직여 루미네의 손을 잡았다. "응?" 그리고 그걸 보던 루미네는 그가 손을 깍지 끼게 두었고 자신을 쳐다보는 그의 표정에 눈을 감았다. 천천히 다가오는 숨소리, 그리고 맞춰진 입술. 항상 차갑다고 생각하는 그의 몸과 다르게 입술만큼은 따뜻하다고 루미네는 생각하며 그가 원하는대로 하게 두었으며 동시에 블래키와 에브이도 서로 똑같이 뽀뽀하고 있었다. "응..." 입술을 떼고 스카라무슈가 눈을 뜨자 아직 눈을 꼭 감고 있는게 귀여워서 뺨을 만져보게 된다. "넌 정말 바보 같아." "왜?" "언론에 그렇게 말해버리면 너도 안좋은 소리 듣잖아." "그런가?" 서로 뽀뽀하고 서로 핥아주는 블래키와 에브이를 보며 루미네는 웃었다. "어차피 그런건 전부 내가 좋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 흠집 생길지 기대하는 거라 별로 상관 없어. 스카라무슈는 나쁜 사람에게 꾀임에 넘어간거고 너는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러면 된거야." "하지만, 다들 나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루미네는 그의 말에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그럼 내가 용서할게. 적어도 나만큼은 네 편이 되어줄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만큼은 네 편이야. 그 말에 스카라무슈는 황급히 얼굴이 더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