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벚꽃 나무 아래에 잠들어 있는 소년이 있었다. 보라빛 베일을 쓴 소년, 그 소년을 본 루미네는 밤이라 소년이 걱정되어 소년을 깨우려 만져보자, 벚꽃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지금은 여름인데, 밤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이윽고 소년도 잠에서 깨어났다. 소년은 가히 아름답다고 할 수 있었다. 중성적인 아름다움. 미인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사람, 아름다운 청자빛의 눈. 그리고 소년은 순수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고, 그게 소년과 소녀의 첫 만남이었다.
가부키모노는 친구가 오지 않아서 슬펐다. 언제 올까,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외롭게 기다렸다. 마을 뒷산에 크게 자란 벚꽃의 주인은 제 친구를 외로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우정이라는 감정이 맞을까? 오랜 세월 기다린 벚나무를 피워준 사람. 가부키모노는 우정 그 위의 감정을 원하고 있었다. 루미네루미네루미네루미네... 그렇게 몇번이고 외롭게 소녀의 이름을 웅얼이다가 토해냈다. 기분이 울적하다. 이런 감정을 그가 가져본 적이 있었을까? 언제 올까? 그 때부터 가부키모노의 마음은 어그러져 있었다. "루미네." 루미네를 가지고 싶다. 루미네를 얻고 싶다. 루미네가 이 벚나무의 바깥으로 나가지 않음 좋겠다. 루미네루미네루미네루미네! 벚나무 밑에 묻혔던 순수한 인형이 깨달은 감정은 어긋나버린 사랑이었다.
루미네가 오자 거기엔 시체를 쌓아올린 소년이, 있었다. 죽어있는 마을 사람들, 시체를 빨아들이는 나무. 벚나무의 주인이 웃으며 루미네를 반가워한다. 최근에 일어난 실종사건, 사라진 짝사랑. 하나도 맞춰지지 않던 퍼즐이 머릿속에서 손쉽게 맞춰졌다. 벚나무의 주인은 그대로 재액 그 자체가 되었다. 화려하게 피어난 벚나무는 루미네가 처음 보았을 때마다 사람을 양분삼아 아주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벚나무의 뿌리가 루미네를 붙잡은 것도 모르는 채 내 잘못이라며 책망하고 무서워한다. "루미네, 기다렸어. 나 너무 외롭고 외로웠어... 루미네가 오지 않아서, 그래서... 루미네가 좋아하는 걸 다 뺏고 싶었어... 그러면 울면서 나를 원망이라도 하며 찾아주지 않을까해서." 미쳐버렸다고 생각한 루미네는 식은 땀이 흘렀다. "이대로 떠나지 마." "어?" 이제서야 벚나무 뿌리가 자신을 포박한 걸 알아챈 루미네는 이전에 중에게 받은 부적을 그에게 붙여도 잠시만 멈추지 가부키모노는 멀쩡했다. "아파, 루미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묶여진 벚나무는 루미네를 놓아주지 않았다. "괴, 괴물... 넌 괴물이야..." "괴물? 응, 그럼 괴물 할게. 루미네가 날 떠나지 않았으면 이러지도 않았는데, 루미네가 떠나니까 나 너무 외로워서... 사람을 먹었어! 별로 맛있진 않지만 루미네가 벚꽃을 좋아했으니까 화려하게 피웠거든." "미, 미쳤어... 미쳤다고!" 가부키모노는 웃고 있었다. 벚나무 밑에는 시체가 묻혀있다. 그런 말은 장난으로 생각했는데 저 벚나무의 주인은 단단히 미쳐있다. 어서 빠져나가야하는데 루미네의 완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루미네... 영원히 같이 있어 줘."
괜찮아. 루미네, 아프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무서웠다. 식은 땀이 계속해서 흐른다. 분명, 분명, 이 일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후회가 밀려온다. 자신이 이 벚나무에 오지 않았다면 벚나무가 이렇게 피어날 리는 없으니까. 재액이 웃고 있다. 제 손에 들어온 것이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벚나무 뿌리에 잡힌 소녀를 보며 천천히 몸을 만진다. 소녀는 여전히 예뻤다. 그에게 웃어주는 표정, 그 어느것하나 좋았고 겁에 질린 표정도 사랑스러웠다. "가부, 키모노... 이거 풀어줘!" "싫어." 내리까는 표정. 그게 묘하게 무서웠다. "멋대로 마을에서 나가 도망치려고까지 했던 루미네가 나쁘니까?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사랑하는게 좋았어? 응? 루미네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의 것도 아닌데 왜?" 요괴, 아니 이제 재액 그자체인 신이 되어버린 소년은 화를 내다가 분을 참곤 웃었다. "이제 괜찮아, 루미네에게 나쁜 말 하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괜찮아, 나는 루미네가 아픈 짓 하지 않아. 그냥 조금... 기분 좋은 거 하고 싶어."
그만 둬. 그만 둬, 제발,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렇게 말해도 가부키모노는 그만두지 않았다. 옛날에 루미네가 준 동화 속에서 행복하게 아이를 가진 인간이 부러웠던 그는 루미네와 자신의 아이를 원하고 있었다.
소녀는 재액신에게 사로잡혔다. 오지 않는 낮, 그리고 이 공간만 따로 떼어진 것 마냥, 벚꽃이 휘몰아치자 루미네의 옷이 바뀌었다. 순백의 옷. 루미네가 싫다고 마음 속으로 거부해도 몸은 이미 그에게 주도권을 뺏겨있었다. "루미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벚꽃이 휘몰아친다. 벚나무가 쌓여진 시체를 먹는다. 이건 미쳤다고 생각해도 점점 생각은 가라앉고 자신을 비워버린다. 오직 그만을 생각하며. 옷의 의미를 이젠 모르겠다. 그래도 가부키모노가 좋다면 이걸 입고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무의식에서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은 어째서 슬플까? 그렇게 생각했다. "미천한 몸이지만, 잘 부탁 드립니다." 멍한 의식이 그렇게 말하며 흐드러지게 피어진 밤 벚꽃, 그리고 낮이 오지 않는 날에 재액은 제 신부를 보며 웃고있었다. 사랑하고 사랑해서 사랑하기에 사랑하기 때문에.